국제회의
‘한국이 좋아서, 서울이 가고파서’ … 달라진 K-MICE 위상 보여준 ‘APSR 2022’ 성황리에 막 내린 26차 아시아·태평양 호흡기학회 학술대회(APSR 2022)
·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13년만의 서울’ 개최
· 코로나에도 석학·의료진 ‘2000명 이상’ 참가
· 현지에서 써온 ‘추천 리스트’ 메모지 ‘빼곡’
· 개막 사흘전 입국, ‘자유여행’ 즐기는 진풍경
· 참신한 방식, K-컬처… 참가자 만족도 ‘최상’
코로나19 7차 유행에 접어든 최근 호흡기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최신의 연구주제를 두고 머리를 맞댄 국제학술대회가 수많은 혁신과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막을 내렸다. 최신 연구동향은 물론이고 학술대회 진행방식부터 참가자들의 동선과 K-컬처에 대한 기대 등 모든 것이 새롭고 참신했다는 평가다. 지난 11월 17~20일 나흘간 코엑스에서 열린 ‘26차 아시아태평양 호흡기학회 학술대회(The 26th Congress of the Asian Pacific Society of Respirology, APSR 2022)’에서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회장 이상도)가 지난 2009년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로 유치·개최했는데 학술대회 현장 분위기와 참가자들의 평가에 비춰 결과는 성공적이다. 두 번의 한국 개최는 모두 서울(코엑스)에서 열렸다. 게다가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대회 이후 3년 만의 ‘대면’ 국제학술대회다.
APSR사무국을 비롯해 전세계 참가자들은 서울대회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1년 연기된 데다, K-컬처의 본산에서 개최하는만큼 이번 APSR 2022에 거는 기대는 유달리 컸다. 코로나19 국가 방역지침에 따라 국외 이동이 제한된 중국과 일본 참가자를 제외하고도 전세계 45개국에서 2000명 이상의 호흡기 분야 전문가들이 오프라인 현장에 모였다.
△ APSR2022 행사장 모습 (APSR2022 사무국제공)
MICE 측면에서 주목할 점은 외국인 참가자 상당수가 관광명소와 맛집, 영화·드라마 촬영지 등 ‘서울에서 꼭 가봐야할 곳’ ‘꼭 먹어봐야할 음식’이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현지에서 본인 혹은 자녀·지인들이 써준 ‘추천 리스트’였다. 대회 개막 수일 전부터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순수 자유여행을 즐긴 후 학술대회를 찾은 참가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무국 관계자는 “코로나19에도 전세계 많은 회원들이 직접 대회 현장을 찾았다는 건 아태지역 호흡기 분야 학문과 의료기술이 세계 수준에 올랐다는 걸 방증한다”면서도 “APSR 2022는 코로나 펜데믹 이후 K-의료와 K-컬처 그리고 K-MICE의 위상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프로 앤 콘, 미트 더 프로페서 등
기존 틀 깬 세미나로 “역대급” 호평, 왜?
일단 APSR 2022는 내용과 형식부터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뜨려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회 나흘간 만성 폐쇄성 폐질환, 천식, 알레르기, 만성기침, 기도 질환, 폐암 등 다양한 호흡기 분야 학술토론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세계적인 호흡기 분야 전문가들은 6개의 기조강연과 함께 총 80여개 세션을 소화했다. 이 세션들은 APSR 2022에서 최초로 시도한 ‘프로 앤 콘(Pro and Con)’ ‘미트 더 프로페서(Meet the Professor)’ ‘온 디멘드 플랫폼(On-demand Platform)’ 등을 통해 활기찬 분위기를 이어갔다.
△ 참가자들이 토론하는 모습 (APSR2022 사무국제공)
APSR 2022는 강연이 진행되는 중에 유독 핸드폰을 쳐다보는 참가자들이 많았고,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하는 청중도 많았다. ‘프로 앤 콘(찬성과 반대)’ 방식 때문이다. 프로 앤 콘은 하나의 주제(환자 혹은 질환)를 던져놓고 ‘당신이라면 A라는 약을 쓰겠나, B라는 약을 쓰겠나’라는 식으로 화두를 던지는 토론방식이다. 대가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면서 의학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기존의 치료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다.
APSR 2022에서 프로 앤 콘은 △Asthma △Interstitial Lung Disease △Lung Cancer △COPD 네 개 분야에서 진행했고, 모바일앱을 통해 실시간 투표로 결정했다. 얼핏보면 한국의 유명 개그 프로그램 ‘사망토론’과 유사한 방식이다. 사무국에선 찬반투표를 비롯해 연사와 청중 간 기본적인 오프라인 소통은 모바일앱에서 진행돼 와이파이, 미팅 플랫폼 등 IT 인프라가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면 시도조차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또 다른 특이점은 연사가 발표하는 동안 좌장이 무대를 떠나지 않는단 점이다. 심지어 좌장이 2명이다. 이들은 연사가 발표하는 내내 연사의 발표 요지를 메모하면서 연사와 청중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둘러봤다. 발표를 하는 연사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는데, 이건 ‘미트 더 프로페서’의 독특한 진행방식 때문이다.
미트 더 프로페서는 한 분야의 대가를 초청해 강연하고 토론하는 단순한 세미나 방식을 정반대로 바꿨다. 강의는 짧게, 토론은 길게 즉 세미나의 주인공은 ‘토론’이다. 1시간 기준으로 강의 20분에 토론이 40분인 셈이다. 두 명의 좌장은 연사의 강연내용을 두세 갈래로 나눠 맡은 후 청중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서 예상질문을 뽑아낸다. 강연이 끝나면 두 좌장은 남은 시간동안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여기에 청중도 가세한다. 연속되는 질문세례에 연사(대가)는 자신의 학문적 소신과 경험을 녹여내며 ‘진짜 강의’를 시작한다.
사무국 측은 “의학에서 실습만큼 중요한 게 대가들과 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프로 앤 콘과 미트 더 프로페서를 통해 대가들과 이야기하면서 ‘경험’을 나누는 걸 유도했다”며 “APSR본부 관계자들도 ‘강의가 늘어지지 않고 짜임새 있게 진행됐고, 역대 펜데믹 이전보다 활기찬 프로그램들이 많아 너무 좋다’라는 평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학술대회 동행한 가족들 “K-컬처 경험하러 왔습니다”
전세계 45개국 2천여명의 참가자들은 호흡기 전문가답게 기본적인 방역을 엄격히 지켰다. 외국인 참가자 전원이 코로나19 백신을 맞았고, 누구 하나 실내에서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국가마다 방역수칙이 달라 최근 외국인 MICE 참가자들이 실내 행사장에서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APSR 2022 참가자들은 확실히 달랐다.
달라진 풍경은 또 있었다. 참가자들이 메모지를 들고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현지에서 열심히 찾아본 흔적이 묻어나는 한국과 서울의 여행일정을 담은 ‘추천 리스트’다. K-팝의 본거지에서 K-컬처를 경험해보고 싶은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사무국에 따르면, 4년 전 개최지 선정평가를 할 때부터 외국인 평가단은 K-컬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나흘 일정 틈틈이 짝을 이뤄 코엑스 인근 혹은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K-컬처를 즐겼다. 북촌한옥마을, 태권도, K팝 댄스, 한강 크루즈, 광장시장 한식투어 등 사무국이 준비한 투어 프로그램도 인기였지만, 각자 찍어온 좌표(명소, 맛집 등)를 따라 흩어졌다. 유독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들 역시 ‘꼭 가봐야할’ 한국과 서울을 경험하기 위해 동반여행에 적극적이었다는 게 사무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코엑스의 지리적 이점(강남구 삼성동)도 한몫했다. 센터엔 공항터미널이 있고, 버스와 지하철역이 연결돼 있어 1시간 이내면 ‘강남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 한옥·한식 등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K-드라마·영화 촬영지에 로컬문화까지 섭렵할 수 있다는 건 참가자들에게 MICE 목적지로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APSR 2022를 주최한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의 이상도 회장은 “학회의 모든 회원이 활발한 네트워킹으로 국제화·선진화하는 기회의 장이 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서울대회에서 한국의 MICE를 경험한 전세계 전문가들이 다시 한 번 한국과 서울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회 사흘전 자유여행, 메모지엔 맛집 리스트 빼곡… K-컬처 실감했다”
[인터뷰] 심재정 APSR 2022 사무총장(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
△ 심재정 APSR 2022 사무총장
· 13년만 한국 개최…‘서울에 가야할 이유’ 크게 늘어
· 외국인, 전통보단 한강 등 K-콘텐츠 촬영지 ‘선호’
· “K-컬처로 서울관광 홍보 잘되니 ‘학술’도 따라가”
‘2009년 이후 13년만의 한국 개최’
심재정 26차 아시아태평양 호흡기학회 학술대회(APSR 2022) 사무총장(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 사진)은 “코로나19에도 이렇게 많은 전세계 전문가들이 직접 학회 현장을 찾아와주어 놀랍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 11월 17~20일 나흘간 코엑스에서 열린 APSR 2022엔 전세계 45개국에서 2천여명이 넘는 석학과 의료계 인사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국외 이동이 제한된 중국과 일본의 의료진이 대거 불참해 예년 기준 400~500여명이 빠진 수치다.
이처럼 뜨거운 반응에 대해 심 사무총장은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장기화 하면서 호흡기 분야 전문가들이 학문 교류를 할 기회가 적었던 터라 학문적 열정이 반영된 것”이라면서도 “K-컬처에 관한 세계인의 폭발적인 관심을 실감하고 있다”며 놀라워했다. 학자들 사이에서 학술대회에 가야할 이유 못지않게 한국, 특히 서울을 가야할 이유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심 사무총장의 전언이다. 학술대회 이튿날인 18일 코엑스 현장에서 심 사무총장을 만났다.
-13년만의 한국(서울) 개최다.
“감회가 새롭다. 2018년 개최지를 두고 비딩을 했는데 중국, 싱가포르와 경쟁했다. 특히 중국에 호흡기 분야 의사들이 많은데 되려 한국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2009년 개최 경험이 있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평가단은 개최지 서울에 주목했다. 서울은 국제공항에서 가깝고 시내 교통도 편리하다. 호텔도 훌륭하고 MICE를 하기에 모든 인프라가 풍부하다. APSR 참가자는 전세계에서 오기 때문에 교통을 비롯해 어느 하나라도 불편하면 높은 만족도를 기대할 수 없다. 13년 전 참가했던 교수들의 말을 빌리면 ‘도시가 익숙하고 현대화 돼 있어’ 최적의 목적지다.”
-학술대회의 전체 주제는 ‘Above and Beyond(나아가자)’다.
“호흡기 분야의 경우 아태지역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학문적으로 뒤쳐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양질의 진료를 할 수 있고 학문적으로도 상당부분 발전했다. 따라서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아태지역이 학문적으로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길 바라는 뜻을 담았다. 국내 학회에겐 ‘이번 기회에 앞으로 나아가 세계화하자’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 APSR2022 홍보관 모습 (APSR2022 사무국제공)
-참가자 섭외부터 이동, 안전·보안, 숙식 등 운영이 어렵진 않았나.
“전세계 45개국에서 2천명 넘게 왔으니, 기대한 숫자까지는 도달했다. 중국에서 한 분도 못왔고, 병원을 (코로나 규제를) 풀지 않은 일본까지 못왔단 걸 감안하면 굉장한 수치다. 중일 빼고 회원이 거의 다왔단 거다. 코로나19 탓에 섭외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K-컬처, K-뷰티 이런 이슈 때문에 다들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북촌한옥마을, 태권도, K팝 댄스부터 한강 크루즈, 광장시장 한식투어 등 투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비딩 과정에서도 느꼈는데, 외국인들이 서울에서 이런저런 걸 해보고 싶어 했다. ‘한류’ 영향이 큰 것 같다. 서울관광을 예로 들면 예전엔 고궁, DMZ처럼 한국의 고유문화를 보여주는 곳으로 갔다면, 이젠 한강이나 K-팝, K-콘텐츠 촬영지를 선호한다. 물론 고궁관광이나 DMZ관광은 굳이 주최측에서 제공하지 않아도 워낙 잘 알려진 측면도 있다.”
-한류에 관한 참가자들의 인식이 궁금해진다.
“아들과 동행한 네덜란드의 한 참가자(의사)는 학술대회 사흘 전에 왔다고 했다. KTX를 타고 강릉-속초 투어를 하고 왔단다. 열여덟살 아들이 전자 분야를 전공하고 있어 삼성 같은 기업을 잘 알고,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인사 정도는 한국말로 알고 있어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교통편, 명소, 맛집 등 여행일정을 직접 짰다며 수첩을 보여주더라. 관광청에서 나오는 프로그램도 즐겨 보고 해외에 한국여행에 관한 잡지도 많단다. 포르투갈 의사 두 명도 학술대회 일정보다 먼저 와 투어코스를 자체일정으로 소화했다. 사실 학술대회 참석차 중국이나 일본을 자주 가는데, 우리에겐 친숙한 나라이지만 막상 혼자 움직이기가 쉽지 않지 않나.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이 (외국인 입장에서) 여행하기 워낙 잘 돼 있다’고 말하더라.”
-한류·K-콘텐츠 바람이 MICE에 실제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
“오늘도 외국인 참가자 네 분이 손잡고 한옥마을을 간다며 메모지를 보여줬다. 떡볶이를 어디서 먹어야 하는지 다 써뒀더라. K-컬처로 한국의 서울관광이 홍보가 잘 되니 ‘학술’도 따라가는 것 같다. 한국에서 개최한 APSR 2009 때 사무차장을 맡았는데, 이때도 한류 바람이 불 때였다. 외국인 참가자들은 한국음식이 몸에 좋다며 대표적으로 김치를 알고 있었는데, 점차 ‘문화’로 바뀌는 것 같다. 한국하면 K-컬처, K-팝, K-뷰티 이런 게 눈에 익은 거다. 한국에서 행사한다고 하면 일단 오고 싶은 거다. 김치를 먹으려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을 거 아니냐. 사막 한복판에서 학술대회를 한다고 하면 아무도 안 가려 하는 것과 같은 거다. 확실히 한국 특히 서울은 외국인 참가자들 사이에 ‘가보고 싶은 곳’이 됐다.”